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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밋서울 이후 일련의 사건에 대한 C의 의견1: 상상에 기반한 인신공격적 서술에 대한 문제제기


이 글은


  • 2019년7월25일에 공개된 <노리밋 성희롱 사건해결 및 D씨의 허위사실 유포 중단을 위한 대책위의 입장>이 대부분 상상과 추측에 기반한 주장이라는 것을 둘러싼 문제를 점검한 후

  • 노리밋 서울 이후 벌어진 사적 관계 단절과 그것이 공적으로 확장되는 과정에 반영된 사고방식을 확인

  • 그리고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배경:


이 일과 관련해 두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2017 노리밋 서울이라는 국제 행사 준비 과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노리밋은 매년 아시아 각 나라/지역에서 만나 아시아 “얼간이(마누케)-얼터너티브”들의 “지하문화권”을 만들자는 기획으로 2016년 도쿄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다.) 노리밋 서울 준비과정 중이던 2017년 7월 행사기획을 위해 일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던 채팅방에서 도쿄 코엔지 그룹의 한 명이 “아시아 호스트 크럽, 아시아 걸즈 바”를 하자는 제안을 올린것이 문제의 발단입니다. 이에 채팅방에 속했던 한 명이 문제를 제기하자, 몇 명이 문제제기에 동참하거나 해명/사과하는 목소리를 냅니다. 하지만 문제제기자를 포함한 두명이 채팅방에서 탈퇴하고 이후 정신적 고통 (피해)을 호소합니다. 


두 번째 사건은 첫 사건에서 약1년반 후인 2018년11월 도쿄에서 열린 올림픽반대 영화 상영회에서 일어난 일로, 주최측이 당시 도쿄에서 연구/활동하던 D 씨에게 자리를 떠날 것을 요청한 데서 시작됩니다. 현장에서 전달된 이유는 행사에 한국에서 참여한 <평창올림픽반대연대>의 멤버이자 노리밋 서울 당시의 문제제기 연대자의 한 명인 A 씨가 D 씨가 행사장에 있는 것에 대해 불안을 호소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메일을 통해 평창올림픽반대연대가 D 씨에게 공식적으로 전달한 내용은 노리밋 서울에 참여한 D 씨가 “가해자”이며 자신들은 앞으로도 가부장제와 간강 문화와 싸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간략한 경위:


  • 2017년7월 노리밋 준비 채팅방에 도쿄 주최 측에서 거론된 제안으로 “아시아 호스트 크럽, 아시아 걸즈 바” 제안. 몇 명이 해명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발언/기획이 철회된 한 편, 다른 멤버들은 문제제기에 대한 공감을 표함. 일련의 대응의 미흡함을 지적하며 문제제기자 두 명 탈퇴


  • 2017년 9월18일 노리밋 서울의 일환으로  <코엔지와 빈마을> 대담회 행사 (진행을 D 씨와 제가 맡음).  위 발언문제와 같은 열린 공동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차별과 대응방법 논의.

  • 2017년 9월20일 서울에서 문제제기자의 한 명이 공개강연.


  • 후 현재까지 문제제기자들 대부분과 관계 단절 지속.

  • 1년반 후  2018년11월22일 도쿄에서 열린 올림픽반대 상영회에서 문제제기자들과 연대하던 A씨가 불안해 한다는 이유로 D 씨는 자리를 떠날 것으로 요청 받음.

  • 후 관련 단체들 및 개인들과 직접 만남,이메일 교환, 충재자를 통해 대화/교섭 시도를 했으나 기본적인 소통 마저 실패. 2019년5월1일 D 씨의 공론화 문서 발표. (https://beyond frame2019.tistory.com/1)

  • 2019년7월25일 <노리미트 성희롱 사건해결 및 D 씨의 허위사실 유포 중단을 위한 대책위의 입장> 발표. (https://bit.ly/2Zgz6av)


  • 이하 <노리밋 성희롱 사건해결 및 D씨의 허위사실 유포 중단을 위한 대책위의 입장>은 <대책위 입장>으로 표기


  • <대책위 입장>을 작성한 그룹은 <대책위>로 표기


  • 저는 <대책위 입장> 에 등장하는 C입니다. 기타 이름 약자는 거의 모두 <대책위 입장>에 나오는 약자를 따릅니다.



1. 제가 노리밋 서울에 참가하게 된 경위


2017년, 저는 노리밋 서울 준비 팀(서울, 도쿄 포함) 사람들과는 거의 안면조차 없었던 반면 노리밋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스스로를 “익명의 다수”라고 부른 그룹, 현 <대책위> 내 사람들과는 친분이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계속 이야기를 주고 받은 B 씨와는 오랜 친분이 있었습니다.)

 

2017년 봄, 중국에 체류중이던 D 씨로부터 중국 활동가들과 함께 노리밋 서울에 참여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저는 지방에 살고 있기도 했거니와 참가할 생각은 딱히 없었습니다.

 

2017년 7월 말, 당시 문제제기 그룹이었으며 현 <대책위>의 일원으로 여겨지는 B 씨로부터 “아시아 걸즈바/호스트 클럽”발언을 둘러싼 이야기에 대해 듣게 됩니다. 이후 8월 초 “익명의 다수”가 비판글을 올렸다는 이야기를 B 씨에게 들었고, 그 글(에버노트 비판문1)을 SNS에 공유했으며 내용에 대해서도 B 씨와 의견을 나눴습니다. 8월 26일 B 씨에게 두 번째 글(에버노트 비판문2)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고, 이후 몇차례에 걸쳐 많은 대화가 이어집니다.

 

한편 D 씨와도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당초 단순 참가할 예정이었던 D 씨는, 에버노트 글 이후 노리밋 서울 사무국이 준비중이던 <코엔지와 빈마을>이라는 행사에 좀 더 적극적으로 관여해 이 문제에 관해 논의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련의 대화를 거쳐 저도 함께 하기로 합니다.

 

 

2. <대책위>의 서술이 왜곡한 것들


<대책위>는 “C씨가 <코엔지와 빈마을>이라는 행사를 아주 오래전부터 기획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토론회라는 생각이 나온 것 자체가 두 차례의 에버노트 글 이후이며, 그 이후로도 한동안 문제제기에 대해 숙고하는 한편 큰 흐름에서 운동의 맥락과 논리에 대한 논의를 했습니다. 토론회 참여를 결정하고 실제로 준비를 시작한 것은 행사 일주일 전부터이고, 질의 내용을 결정한 것은 행사 전날이었습니다. 행사에 참가한다는 것을 B 씨에게 전달하는 것이 늦어진 건 사실이지만, 그 이전 한달 여의 시간에 걸쳐 제가 가진 문제의식을 이야기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대책위>는 제가 행사에 참석한다는 것을 행사 전날에야 전달한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게 서운했다면 서운했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 채팅에서 B 씨가 제 설명을 이해한 것, 잘 다녀오라고, 이후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는 그간 나눠온 대화를 바탕으로 한 이해였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B 씨가 당시 자신이 한 말을 부정하고 싶은 기분인 것은 잘 알겠습니다만, 간헐적이었지만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지속된 (공감에 기반하고 있으나 의견의 차이도 분명히 드러나 있었던) 대화 및 저의 행사 참가에 대한 자신의 말을 전부 부정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부득이하게 사적대화의 기록을 공개합니다. 글 말미 자료1 참고. )


한편. 행사 당일 알게 된 일입니다만. 행사에 참여한 빈마을 측 대담자가 문제제기 그룹의 일원에게 전화로 보이코트 요청, 혹은 참가에 대한 항의를 받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요청을 누구에게 얼마나 광범위하게 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저의 경우는, 이야기를 지속해온 B 씨에게도 누구에게도 그런 요청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전화 항의를 받은 빈마을측 대담자는, 딱히 빈마을을 대표한다기보다 개인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이고 C(저)가 B 씨에게 이 행사에 대해 이야기 해둔 상태이기도 하다는 설명을 했다고 합니다.

 

행사가 끝난 다음날 (9월 19일) 오후 3시경, B 씨가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 다음날 (20일) 자신들이 진행하는 공개행사에 오지 말아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대책위>는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코엔지와 빈마을> 행사 이후 C씨는 M (최초문제제기자중 한명)……이 서울에서 여는 공개 강의에 참가하고 싶다고 B에게 전화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 M은 본인의 강의에 노리미트 관계자들이 참석해 괴롭힐까봐 불안해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숙소 밖으로 나서는 것도 두려워하는 상태였습니다. 때문에 B는 M이 혹시나 노리미트 기획자나 참가자가 본인의 강의에 올까봐 몹시 겁에 질린 상태라고 자세히 설명하고 정중히 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C씨가 <코엔지와 빈마을>이라는 행사를 아주 오래전부터 기획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C씨에게 이 모든 것을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물었으나 답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없습니다.”

 

 

분명히 얘기하지만 이는 사건의 경위도 내용도 완전히 왜곡하고 있는 진술입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글을 작성하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얼마간의 사실과 얼마간의 창작을 연결해서 원래의 맥락과는 상당히 다른 인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책위>에 속한 사람들 대부분은 구체적인 경위/사실관계를 모르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인상을 받습니다. 아니면 단지 정당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작성된 전도된 진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왜곡과 그 왜곡에 기반한 비난은 당하는 입장에서는 대단히 고통스럽습니다. 운동 사회가 마주하는 사회적 문제들에 비해 사소해 보일지도 모릅니다만, 이런 사소한 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지평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제게 있어서는 이 일련의 상황 속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이기도 했으므로 하나하나 지적하도록 합니다.

 

1) 제가 <코엔지와 빈마을> 행사 이후 B 씨에게 전화를 걸어서 M 씨의 공개강연에 참가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대책위>의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와 B 씨는 8-9월에 걸쳐 단 한번도 전화를 한 적이 없습니다. 강연에 가서 이야기를 하자는 말은 9월18일 채팅으로 이야기했던 사항이었습니다. (글 말미 자료2를 참고.) 

 


2) <고엔지와 빈마을> 행사 다음날 처음으로 B 씨와 통화했고, 그것은 B 씨가 제게 걸어온 것입니다. B 씨는 통화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우리(B 씨와 나)가 나눈 대화가 모두 알리바이인 것은 아니냐"는 말을 했습니다. 당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던 제가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자 B 씨는 더이상 설명하지 않고 화제를 돌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화가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는, 제가 통화 후에 알리바이라는 말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B 씨는 그 전 한달 여간 저와 B 씨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두고, 그것이 [제가 어떻게든 행사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과정-즉, 우리사이의 대화가 행사참여를 위한 알리바이]가 아니었냐고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깨달은 저는 좀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보다 큰 감정은 실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제가 당시 느낀 화나 실망보다도 더 큰 문제점과 함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3의 (1)에서 다시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3) 한편 <대책위>는 통화내용 중 핵심적인 부분, B 씨가 제게 강연에 오지말라고 하면서 분명히 제시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코엔지와 빈마을> 토론회 직후(통역을 했던 저는 상당히 지친상황이었는데) 행사 참가자들은 행사 공간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맥주 등을 마시며 뒷풀이를 했습니다. 저는 D 씨 그리고 빈마을에서 온 참가자들과 벽 쪽에 함께 있었는데, 당시 중국에서 온 한 활동가가 즉흥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잡히는 앵글의 셀카를 찍습니다. 그 사진 안엔 저희도 들어가고 코엔지의 중심 인물이기도 한 참가자도 들어갑니다. 코엔지 인물은 저희와는 꽤 떨어져 앉아 있었으므로 대화를 하거나 교류를 할만한 거리도 아니었습니다만 (그리고 이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무튼 이 사진이 페이스북에 올라간 모양입니다. 통화에서 B 씨는 그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며 왜 제가 그 인물과 같이 사진에 찍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좀 당황한 저는 나름대로 상황 설명을 했지만, 사실 그것이 설명이 필요한 일인가 싶었습니다. 무슨 명분이나 이유가 있는 행동이 아니라 그냥 우연히 사진에 같이 찍힌 상황이니까요. 그러나 B 씨는 그 사진에 대해 M 씨를 포함한 문제제기자들(“피해자”)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20일의 행사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무슨 파파라치 사진도 아니고 좀 이상하다고 말하면서도, 아무튼 당사자들이 힘들다고 하니 그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4) <대책위>는 이 경위를 위와 같이 경위와 문맥을 뒤섞고 편집한후, “C씨가 <코엔지와 빈마을>이라는 행사를 아주 오래전부터 기획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C씨에게 이 모든 것을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물었으나 답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통화 당시 B 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B 씨가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 것은 사진에 대한 문제였고 이에 대해 저는 가능한 한 설명했다는 사실입니다 . 한편 제가 이 행사를 ‘아주 오래전부터 기획’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당시 전혀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러니 2년간 답을 기다렸다는 말에 뭐라고 하면 되는지 모릅니다. 

 

5) 아무튼, 저는 문제의 사진을 이유로 오지말라고 하는 B 씨의 말에 납득 할 수 없었지만,  상황을 고려해서 B 씨의 요청을 받아들여 20일의 행사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저야 말로 이후 B 씨로부터 먼저 연락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B 씨는 그대로 저와 관계를 끊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사진에서 코엔지쪽 참가자 바로 옆에서 사진이 찍혔으며 실제로도 코엔지와 친밀한 관계인 대만측 참가자와는 B 씨가 계속 친분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그 사진이 결정적인 이유인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즉, 어떤 대의명분이나 공적인 논리, 혹은 이성적인 추론을 통해서는 전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단지 ‘B 씨에겐 B 씨의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여러가지 이상한 이야기들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제가 단지 노리밋에 가고 싶었을 뿐이면서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핑계를 댔다거나, 노리밋 서울에 참여한 것은 코엔지와 친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라거나. 

 

심지어 B 씨의 고통을 이유로 이야기도 하지도 않고 저와 관계를 끊는 다른 사람들까지 나타나는 상황이었으나, 뭐라고 해야 할지 표현도 소통도 무의미한 상황이 된 것 같았습니다. B 씨와의 긴 시간에 걸친 친분을 생각할 때 씁쓸함을 넘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몇 번인가 편지를 쓰거나 공통의 지인을 통해 연락을 해볼까 싶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에버노트 비판문2가 보여주듯 문제제기자(=피해자)에 대한 말걸기가 2차가해로 규정되는 상황에서 말걸기가 어렵기도 했습니다. 결국 저는 이 상황을 개인적 친분의 단절이라는 개인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6) 그런데 <대책위> 입장문은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정중히 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C씨는 본인이 운동 현장에서 겪은 ‘배제'라고 부릅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단지 개인적으로 관계가 끊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 저는 제가 겪은 일에 대해 “운동 현장에서의 배제”라는 말을 쓴 적도 없고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없습니다. 아마도 <대책위>는 2017년 노리밋 이후의 경위와 2018년11월 도쿄에서의 반올림픽 상영회 사건 이후의 경위를 섞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그런 식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섞은 후 인신공격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곤란할 뿐 아니라, 당하는 입장에서는 정말로 고통스럽습니다. [각주:1]

 

이 사건과 별개로 저는 문제제기자들이나 <대책위>에 속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페미니즘적인 의식/의제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그런 활동을 지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활동가로 인식하며 사회운동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자신과 생각/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 혹은 상상에 기반한 이야기로 저(또는 D 씨)를 “가해자”화하고 공격하는 내용을 퍼블리싱하는 것, 그것을 저를 알지도 못하는 (역시 사회 운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다시 읽으며 저를 포함한 사건 전체에 대해 망상에 가까운 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 이 것은 제가 개인적으로 겪는 고통의 차원을 넘어 매우 문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3. 대화의 단절 혹은 유사 법정이라는 방식에 대해


저에게 노리밋 서울 이후의 사태는 한 마디로 친구들과의 관계 단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친구 관계의 단절이라는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난 일이 결국은 운동 방식의 커다란 차이/어긋남을 함축하고 있었던 것 또한 분명합니다. 그 차이/어긋남은 이제 일그러진 형식으로 전개되어 공적인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현 <대책위> 측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있어 자신과 다른 해결을 도모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개개인으로서 혹은 집단으로서 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제가 상처를 받는 것과는 상관 없이 존중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관계 단절이 유사 법정이라는 형식을 통해, 그러나 정확한 사실관계의 확인도 없이 상대방을 공공연히 가해자화하면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1) ‘알리바이’라는 말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전화통화 당시 B 씨와 친구로서 대화를 하고 있었던 저는 당시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알리바이는 어떤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결백을 호소하기 위해 제시하는 증거입니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쓴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단어는 B 씨가 이미 노리밋 서울에 참가한 저와 자신의 관계를 원고/검찰과 피고의 관계로 상정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2) 노리밋 서울에 참가한 D 씨가 1년 반 후 도쿄의 운동현장에서 나가라는 요청을 받은 것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이는 이후 <평창올림픽반대연대>가 문서를 통해 D 씨를 “가해자”로 규정하는 것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3) 현재 <대책위>가 D 씨와 제게 “피해자”의 허락도 없이 “대리인 행세”를 했다고 비난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대리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발상 자체가 없습니다. 그리고 허락을 구하기 위해 B 씨에게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친구로서 마음 상하지 않기 위해서 이야기 했을 뿐입니다. B 씨가 당시 잘 갔다 오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은 마음이 상했다고, 친구니까 자기들의 행동에 동참해주길 바랬다고 말한다면 충분히 이해할수 있습니다. 관계와 맥락 안에서 일정 부분 사과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허락”을 받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사과도 납득도 할 수 없습니다.

 

<익명의 다수>, <평창올림픽반대연대> 그리고 지금의 <대책위>는 지속적으로 유사법정을 만들어 가해자를 규정하고 징벌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유의미한 토론은 불가능해보입니다. 모든게 지리멸렬한 진실공방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노리밋서울에 참가한 것이 어째서 “강간문화 가담”, 혹은 “가해”가 되는가 밝혀달라. 프레이밍에 기반한 적대적 선긋기를 멈춰달라는 D 씨의 호소는, D 씨가 어떤 가해를 가했는지/안했는지 밝히는 진실공방이 되었고, 저 또한 “가해”가 없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혹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해 증거를 제시해야하는, 즉 대화를 캡쳐해 제시하는 식으로 무죄를 증명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정말로 이상한 것은, 모든 토론을 진실공방을 끌고가려하는 <대책위> 측이 실제로는 모든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도쿄 상영회에서 D 씨가 배제된 사건 약 한달 후, 저는 평창올림픽반대연대의 멤버가 포함된 어떤 모임(이전부터 참가하던 모임)에 갑니다. 일상적인 이야기나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러나 각자 일년간 있었던 일들을 나누는 자리에서 제가 상영회의 문제를 이야기하자 <평창올림픽반대연대>의 멤버가 곤란하다며 이야기를 멈출 것을 요청해 왔습니다. 특별히 어떤 사람을 비난하거나 규탄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서로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해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상황 인식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기에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떻게든 대화로 문제를 풀고 싶다는 말을 하고 헤어졌지만 그 후 <평창올림픽반대연대>가 D 씨에게 보낸 답신은 “가해자”, “강간문화”운운하는 판결문 같은 글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개개인에게 시도한 대화는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조직이 정한 일을 개개인한테 묻지말라”는 입장이 말해졌다는 이야기마저 들었습니다.

 

 

4.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좁은 운동 씬 안에서 서로 알고 지내고 연대해오던 개인들 간에 의견의 차이나 문제가 생겼을때, 개개인의 대화를 전면적으로 거절한 채 조직의 이름으로 응징하고 배제하는 것, 그에 대해 조직의 결정이므로 개인의 의견은 묻지 말라는, 즉 개인의 자율성이나 책임성을 완전히 지우려는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결과로 운동 속에서 친분이 있어 왔던 관계 속에서 어떤 대화/설득/교섭/충재의 채널도 원천 봉쇄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입니다. 물론 개인이 가지고 있는 책임성에는 정도가 있고 어떤 정황 속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책위>가 자기 스스로 정당성을 독점하고 저와 같은 개개인에 대한 왜곡과 인신공격을 행하는 상황에서 그 조직 또는 네트워크 안에 있는 개개인은 어떠한 책임도 없다는 주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그러한 태도와 분명히 관련이 있는 유사법정적 사고 방식을 어떻게 현실 속에서 적용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해야겠다고 한다면, 적어도 제대로 된 사실확인의 절차가 필요합니다. 어떤 진상규정과정도 없이 특정한 개인을 일방적으로 “가해자”라고 라벨링하고 응징하는 것은 당하는 사람에 대한 가해일 뿐 아니라, 이런 것이 관행이 되어 버린다면 (문제제기한 측을 포함한) 운동 전체에 해롭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 이후, 저는 한편의 글을 더 올릴 생각입니다. 그 글에서는 현재 고착된 것 처럼 보이는 이상한 대결 구도를 넘어 "해결"에 접근하기 위해 무엇이 가능할지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자료1:


(휴대폰의 화면일 경우 가로 방향으로 하면 글자가 크게 보입니다)




















자료2


:








  1. <대책위>는 이 경위에서 D씨도 그런 주장을 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운동현장에서의 배제”라는 표현은 D 씨가 1년 반 후 2018년 11월에 있었던 도쿄 상영회 현장(그 곳은 D 씨가 연대해왔던 노숙자 투쟁의 현장인 공원입니다)에서 나가달라는 말을 듣고 항의를 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나온 말입니다. 사실 “배제”라는 표현은 일본/도쿄의 노숙운동에서 자주 쓰는 말이지만 한국에서는 생소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대로 한국에서 자주 쓰는 “철거”라는 말은 일본에서는 별로 안 쓰는 것 같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2018년11월 당시 D씨가 쓴 말은 심지어 “배제"라는 단어가 아니라 “오이다시 (쫓겨남)"이라는 단어였고 그 말을 다른 일본 사람/주변 활동가들이 “배제"라고 번역함으로서 이후 등장한 단어입니다. 어쨌든 저도 (제가 아는 한 D 씨도) 그 상영회 사건 이전에 쫓겨남이나 배제 등의 표현으로 노리밋 서울 이후의 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D 씨 반론은 https://beyondframe2019.tistory.com/3의 3을 참조 ) [본문으로]